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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부]창업을 맞이하며_박여연

Posted By hscb  |  16-03-02 10:24

조회 1,071

창업을 앞둔 하루 전 날 학교를 돌아보았습니다. 이별하는 기분은 들지 않고 마냥 좋았습니다. 지난 2년 동안 곳곳에서 보낸 추억들이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당시에는 심각했던 문제들에 고개 푹 숙이며 지냈던 일들을 떠올리니 우스웠습니다.
 2학년 마지막 즈음엔 집을 구했습니다. 전공부에서 누린 것들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습니다. 농사에 미숙한 저에겐 적지 않은 크기의 논과 밭이 딸린 집입니다. 학교에서 일할 때처럼 함께 웃어줄 친구도, 일손이 느리다고 핀잔 줄 사람도 없지만 어려울 때마다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이웃이 있습니다. 올해도 흙에서 일할 수 있어 설렙니다. 학교에 처음 입학 했던 그때처럼 두려운 마음이 일지만 학교의 가르침대로, 이 순간에 깨어 그때 그때 할 일을 차분히 해 나간다면, 아직은 텅 빈 논과 밭이지만 여름의 녹음을 지나 가을이 되면 수확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종업을 하고 지난 한 달간, 새로운 집에서 새로운 생활을 준비했습니다. 
때로는 눈을 뜰 때면 낯선 기분이 듭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이 현실을 믿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전공부에 오기 전엔 작은 규모나마 농사를 짓고, ‘정원’ 이라는 낙원을 만드는 일, 식물을 가꾸는 일은 나와는 별개의 다른 세계인,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꿈의 영역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조금 다른 점은 있습니다. 전공부 입학 전부터 타샤의 정원이나 소로우의 오두막집을 떠올리며, 자연이 훼손되지 않은 곳에서 사는 상상을 했습니다. 지금도 그 꿈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누구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흙을 만지며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여깁니다.
 새로 구한 집은 축사와 돈사 사이에 있습니다. 여름도 아닌데 심한 냄새에 인상을 찌푸립니다. 그렇지만 만약 숲 속의 오두막을 고집하며 이 집도, 저 집도, 이 현실도, 저 현실도 외면했다면 농사를 짓고 정원을 가꾸겠다는 꿈은, 아직도 저와는 상관 없는 꿈의 영역으로 남아있을지도 모릅니다.
 냄새가 나더라도 제가 처한 현실 속에서, 지난 2년 동안 누린 자유로움을 다시 느끼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시골 사람들이 공장식 축사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며 살고 싶습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밭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저녁이면, 오늘 주어진 일을 했다는 것에 온전해진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유로웠습니다. 어쩐지 행복해지는 길이 너무나 단순하고 쉽게 느껴졌습니다. 한 곳에 있으면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걸 배워가는 동안 이런저런 불필요한 짐들을 벗게 되었습니다. 자유로움에 그토록 많은 이동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여행을 떠나 경치 좋은 자연에서 감동을 받을 수도 있지만 망가져버린 자연 안에서도 그에 못지 않은 것들을 느끼고 배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파괴되지 않은 자연 안에서 농사짓고, 정원을 가꾸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그런 흙 위에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제 앞에 놓인 창업의 길이 그런 길이 되었으면 합니다.

스크린샷 2016-03-02 오전 10.23.47.png  |  694.0K  |  0 Download  |  16-03-0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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