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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부]창업을 맞이하며_정선욱

Posted By hscb  |  16-03-02 10:35

조회 1,125

‘시작은 창대하였지만 끝은 미미했다. 항상 시작은 부족함을 느껴서이다. 그렇게 시작된 생각은 꽤나 크고 자신감 넘친다. 하지만 그 욕망은 결국 별거 아닌 게 될 때가 많다.’
 
 작년 겨울에는 홍동에서 지낼 수 있었지만 이번 겨울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긴 시간을 흙을 느끼지 못했다. 기차를 타면서 보는 논, 놀이터나 건물 화단에서 보는 흙이 전부였다. 내 집은 14층 아파트이다. 창문에서 밖을 보면 사람보다 앞에 있는 아파트, 하늘이 먼저 보이는 곳이다. 밖에 나가서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던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푸른색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곳에 있는 푸른색은 어색했다. 집에서 먹는 음식이나 밖에서 먹는 음식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고기가 들어가고 재료들이 큼직큼직하고. 고기를 매일 먹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같이 고기를 먹었다. 집에 온 순간 이미 나는 그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때로는 눈을 뜰 때면 낯선 기분이 듭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이 현실을 믿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종종 손을 다쳤을 때가 생각난다. 손이 더 들어갔으면, 그 때 손가락이 절단되었더라면. 그런 생각이 들면 쉽게 잠을 청하기 힘들다. 참 아쉽게도 그 생각은 흙, 밭, 논에서부터 항상 시작되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끝이 좋지 못하였을 뿐. 다치고 난 직후 학교에 있을 때보다 집에 있을 때 더 그런 적이 많다. 눈으로 볼 수 없으니 상상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그런 생각까지 가나 보다.
 창업식이 며칠 남지 않았을 때였다. 늘 그래왔듯 무기력하고 빈둥대며 하루를 살고 누웠을 때 김을 매던 게 생각났다. 8월, 그 땡볕에서 끝이 보일 듯 보이지 않던 밭에서 호미를 들고 기어갔던 게 생각났다. 그때는 더위에 지치고 풀에 지쳐 힘들다고 했었다. 그렇게 힘들었던 기억이 갑자기 정말 즐겁고 행복하게 느껴졌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분명히 또 힘들 텐데 말이다.
 홍동, 학교에 와서 글을 쓰는 지금 다시 그 생각을 해보니 역시 무진장 힘들었던 기억이다. 가까이서 논을 보지 못하고 흙냄새를 맡지 못하였을 때 흙을 만지던 기억은 즐겁게 기억되었다. 손을 다치던 때가 생각나서 쉽게 잠들지 못하여도 논과 밭에서 일하던 것을 상상하는 일을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
 2년 전에는 어디로 갈지 정해져 있었지만 막막했다. 지금도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하긴 하다. 그래도 이제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갈 곳이 생겼다. 그때가 오면 더 이상 막막하지는 않을 것이다.
 2년 전에는 흙을 그리워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흙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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