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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지화모 필독강추1) 작지만 큰 실험_사랑화폐

Posted By 뜰이  |  12-03-27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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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큰 실험_사랑화폐

무엇을 위한 지역화폐인가
광주에서 몇 년 전 실험했던 지역화폐는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실패한 실험은 평가작업을 통해 새로운 실험을 열 수 있다. 광주 지역화폐실험은 왜 실패했는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시스템과 사고의 차이였다.

법정화폐가 축적이라는 개념이 강하다면 지역화폐는 교환을 중시하는 유통시스템으로서 접근해야 한다. 그것은 서로 통할 수 있는 능력이나 마음, 서비스, 자원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런면에서 니시베 마코토는, “지역화폐는 화폐적인 경제적인 미디어 측면과 언어적인 사회,문화 미디어 측면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지닌 통합형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라고 표현했다. 지역화폐는 상호부조나 자원봉사의 일종이 아니라 커뮤니티 구성원 간에 재화나 서비스를 다각적으로 교환하면서 서로 돕도록 하는 것이며, 그것으로 지역경제 및 커뮤니티 활성화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서로 나눌 수 있는 능력과 가치를 이미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장애를 갖고 있든 없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말이다.

하지만, 현재의 화폐시스템은 교환품목을 자본으로 변환할 수 있는 것(서비스/재화)으로 제한한다. 바로 거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의 화폐시스템에 대한 이해는 현존 경제시스템에서 교환이 가능한 것으로 품목을 국한시키고 있다. 한편 지역화폐는 교환을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지역화폐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사람들은 제공 쪽에 좀더 비중을 둔다. 그래서 수요와 공급에 불균형이 발생한다. 주는 사람은 많은데 받을 사람이 적다. 공급품목의 다양화는 이런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 그러자면 안정적인 공급처를 다양하게 확보해야 하는데, 광주도 그랬지만, 대부분의 지역화폐실험이 실패한 요인이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역화폐는 대부분 레츠(LETS)에 기반한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레츠는 기본적으로 시스템내의 개인,단체 간의 교환이다. 또 다자간 교환방식이 아닌 일대일 교환방식을 지향한다. 전체 시스템으로 보자면 다자간 교환이지만 실제적으로 교환은 일대일 방식이다. 즉 물물교환에 가깝다. 또한 레츠는 계정관리가 복잡하고 교환의 형식이 불편해서 현금 거래방식에 익숙한 현대사회에서는 정서적으로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다양한 교환행위를 유발하고 넓은 지역으로 확장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광주도 마찬가지지만) 초창기 일부 지역화폐 실험들은 지폐를 발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얼굴 있는 화폐’라는 가치에 집착하여 대면 교환방식을 고집하는데서 문제가 발생했다. 거래행위에서는 지폐든 계정관리든 전부 유효하다는 점을 보지 못한 것이다. 즉 화폐의 익명성이 문제가 아니라 화폐교환방식과 시스템의 문제임을 보지 못한 것이다.
 
더해서 지역화폐를 ‘대안’화폐로서 인식하는 측면이 강했던 것도 패인이다. 대안화폐/법정화폐로 구분하는 일은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지역화폐가 어떤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것인가이다.

다국적 자본과 금융자본의 확대 속에서 지역화폐의 기능은, 일차적으로 지역경제가 지속가능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서 ‘지역순환경제’를 확립하는데 있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시스템 참여자들에 한정된 폐쇄적 교환행위에 그치게 된다. 어떻게 하면 폐쇄적 시스템내의 돈이 아닌 지역 모두의 돈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고민에서 출발해야 한다. 새로운 지역화폐 시스템은 어떤 접근법을 택해야 할까? 답을 찾으려면 지역화폐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 질문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화폐는 교환수단으로서 제 기능을 행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경제로부터 계속해서 자원이 외부로 유출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화폐를 본연의 교환수단으로 돌아가게 하고 지역에서 순환되는 경제시스템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체 경제 시스템을 단번에 바꾸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지만, 경제시스템의 일부만 바꾸려고 하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곧 제 3시장을 창출하면 되는 것이다. 이른바 공동체시장(Community Market)이라고 하는 것이다(현재 공동체 시장에 참여하는 마을기업 및 사회적 기업 등이 확장되어가고 있다). 공동체 시장은 공익을 목적으로 한 시장이다. 거기에는 지역 마을기업이나 소규모 상인들까지 참여가 가능하다. 바로 여기에 새로운 지역화폐를 구상할 수 있는 힌트가 들어있다.

<우리끼리 만들어서 쓰는 돈>의 저자 니시베 마코토는 시장을 “일반적으로 경쟁을 통해서 재화나 서비스, 정보 등 이미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자원을 사람들에게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메커니즘이다. 그런 점에서 시장은 사람들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재화나 서비스, 지식이나 정보를 새로 창출하고 그것들을 사회 전체에 배분하고 전달해가는 창조 발견프로세스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표현했다. 즉 화폐가 교환을 위한 수단이라면 시장은 이를 소통시키는 연결공간이다. 그렇다면 시장을 형성하고 그 시장에서 사용되는 화폐 자체를 우리 스스로 찍어내 교환한다면 그것은 ‘자본화된 시장’을 ‘착한 시장’으로 변모시키는 일이 된다. 그리고 시장에서 물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주체를 지역자영업, 상가, 커뮤니티비즈니스, 농가, 시민단체 등으로 한정한다면 경쟁원리가 아닌 공공성을 띠는 호혜적 시장이 창출될 수 있다.

지역화폐를 시장으로 접근할 때는 지역화폐 시스템에 가입되어 있지 않아도 누구든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역화폐의 가치나 의미에 대한 이해 없이도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시장이 열린 동안만 교환이 가능하도록 한정하고 시장이 종료하면 화폐도 소멸시켜버리면 자본축적이라는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지역화폐는 다양한 교환처(구매자/판매자)를 확보하기 위해 지역적 범위를 크게 설정해야 하고, 화폐교환(유통)의 기간을 길게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데, 지역적 범위를 축소하고, 교환기간을 짧게 하는 한정된 시장에서는 이런 어려움이 극복된다.

물론 이러한 방식은 그전에도 일부지역에서 실험되었다. 그러나 이번에 광주에서 행한 실험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시장에 누가 올 것인가라는 점이다. 시장에 대한 접근성, 이게 중요하다. 지역화폐 시장을 창출하되 그 시장에 사람들이 와서 교환행위를 하도록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 거기에 추가로 공적자금이 투입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시장을 ‘착한 시장’이라 부를 수 있다.

‘공동체시장’의 창출
‘착한 시장’에 대한 고민은 지방자치단체와 어떻게 협력하여 만들어갈 것인가로 발전했다. 우리는 포괄적인 환경축제로서 계획되어 있던 ‘승용차 없는 날’과 ‘자원순환의 날’에 그 축제와 시장을 결합하고자 했다. 그런데 농민장터를 추진하는 데에 가장 큰 어려움은 판매량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농가의 참여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최소한의 수익을 보장하기로 했다. 농민장터에 참가하는 지역의 친환경 농가 모두에게 운송비 등 최소한의 경비를 보전해주기 위해 농가당 10만원어치 농산품을 주최 측에서 구매했다(구매된 물품은 지역의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건강한 먹을거리’로서 제공되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판매촉진이다. 시민들을 유인할 방책이 필요했다. 이것은 ‘닫힌 시장’(축제 참가업체와 교환에 참여한 시민들만을 대상으로 한 시장)을 어떻게 운영하여 화폐가 순환되도록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래서 지역화폐를 ‘기획화폐’로서 디자인했다.
마트를 예로 들어보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꼭 필요한 물품만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마트에 들어선 순간 구매욕구가 유발되어 필요이상의 물건을 사기 마련이다. 이처럼 화폐를 일단 어느 정도 유통시킨다면 유통된 화폐이상의 교환행위가 발생하게 된다. 이런 최소한의 화폐유통을 위해 일상생활에서 가장 흔한 재활용품을 결합시켰다.

화폐시스템을 도입한 또 하나 중요한 목적은 새로운 시장인 ‘공동체시장’을 창출하는 것이었다. 현대의 화폐는 교환수단이 아닌 축적수단의 기능이 지나치게 강화되었다. 그래서 실제적인 교환이 필요한 곳에서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지역화폐가 필요하다. 지역화폐는 공동체시장의 조성을 통해 궁극적으로 지역경제의 순환을 목표로 한다.

공동체시장의 조성은 우선 공적자금과 지역자원이 연결되어 지속적으로 돌아가는 ‘순환시장’이다. 여기서는 유통을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다. 지역유통망을 꾸려내지 못하면 마을기업(사회적기업) 등 커뮤니티비즈니스는 기능할 수 없다. 커뮤니티비즈니스의 수익창출을 시민들의 의식변화나 상품개발, 아이디어, 마케팅으로 풀려고 하는 시도도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 기존 시장들이 대규모 유통망을 가지고 자본력으로 승부를 걸어오기 때문이다. 집약적 기술을 보유한다고 해도 단기적으론 성공할 수 있을지라도 장기적으론 대기업에 종속되거나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차별화된 새로운 ‘우리만’의 시장인 ‘공동체(착한)시장’으로 만들면 된다. 단기적으로는 커뮤니티비즈니스의 생산물품을 공적기관에서 우선적으로 매입하도록 하는 게 필요하며, 장기적으로는 커뮤니티비즈니스의 생산품 및 서비스와 지역자원을 연결하는 지역유통망을 만들어야 한다(그런 측면에서 생활협동조합은 먹을거리 이외에 지역자원을 연결하는 유통조직으로 바뀌어야 하고, 이 유통망에는 커뮤니티비즈니스뿐 아니라 지역소규모 상인들도 포함되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장기적인 과제이며 이번에 시도된 것은 ‘닫힌 시장’(한시적 오프라인 시장)을 실험하는 것이었다. 이 시장은 국가규모로 유통되는 법정화폐가 지역 내에서 순환하는 화폐로 탈바꿈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늠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법정화폐든 새로운 지역화폐든 지역경제에 기여하고 지역사회에서 순환된다면 모두 ‘지역화폐’로서 의의가 있다. 지역 안에서 교환,판매가 이루어지며 지역 안에서 순환하는 화폐를 우리는 ‘지역화폐’라고 통칭할 수 있다. ‘닫힌 시장’안에 들어오는 순간 모든 통화가 지역화폐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광주에서 우리가 실험한 지역화폐는 세계적인 환경도시 꾸리찌바의 재활용품 교환프로그램과 캐나다의 마이클 린튼이 창안한 레츠를 결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시장이 형성되고 교환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서 재활용품을 이용한 것이다. 꾸리찌바의 재활용품 교환프로그램과 우리 실험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꾸리찌바의 프로그램이 물물교환의 성격을 띤다면, 우리는 사람들이 가져오는 재활용품에 대해서 물품이 아닌 지역화폐로 교환해준다는 점이다. 이점이 중요하다. 물품으로 교환하면 교환행위가 확대되기 어렵지만 화폐로 교환해주면 물품과 서비스 교환이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화폐’의 운영원리
지역통화로서 지폐를 발행하면 거래가 간편하고 익명성 때문에 불특정 다수가 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대신 유통경로를 포착하기 어렵고, 유통범위가 넓어지면 위조지폐가 생겨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폐를 발행하되 행사 당일에 그 장소에서만 사용되도록 했다. 그래서 화폐명을 “광주를 사랑한다”는 뜻을 담아 ‘사랑화폐’로 정했다. 그리고 1사랑에 1원의 가치를 부여하였다. ‘사랑화폐’를 취득하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우선 재활용품을 가져오면 사랑화폐로 교환해주었다. 행사 당일 농민장터에서 판매가 촉진될 수 있을 만큼 사람들 손에 사랑화폐를 제공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한편 재활용품이 이렇게 한데 모이면 실제적 재활용 수거실적이 높아지기 때문에 이 실험에 지자체가 갖고 있는 공적자금이 투입될 수 있었다. 또한 그 재활용품은 판매할 수 있으므로 소모적인 공적자금 투입이 아닌 선순환구조가 형성된다.

재활용품 교환은 다음의 표와 같이 했다. 화폐뿐만 아니라 물품으로도 교환이 가능하게 했다. 다만 교환되는 품목을 지역 내의 자원으로 한정했다(친환경물비누는 지역의 시민단체가 생산한 것이고, ‘온누리상품권’은 지역의 재래시장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다). 또한 최대로 교환할 수 있는 금액에 상한선을 두어서 한 사람이 획득할 수 있는 화폐를 제한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교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사랑화폐를 취득하는 또 다른 방법은 법정화폐를 교환하는 것이다. 우리는 당일 행사장 곳곳에 화폐교환소를 설치했다. 참가한 시민(구매자)들은 화폐교환소에서 현금을 ‘사랑화폐’로 교환하여 사용했고, 판매자들은 행사종료 후 자신이 보유한 ‘사랑화폐’를 화폐교환소에서 10% 공제액(화폐교환수수료를 구매자에게 부과하지 않고 수익을 얻은 판매자에게 지불하게 했다)을 뺀 나머지 금액을 자신의 계좌로 송금 받도록 했다. 덧붙여 화폐교환을 쉽게 하도록 화폐를 단 1종 1000사랑으로 한정했다.

굳이 ‘사랑화폐’만 사용하도록 하는 이유는 참가자들이 지역화폐에 의한 지역순환경제의 의미를 성찰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것은 경제교육이 자연스럽게 되는 재미난 경제놀이가 되었다. 그리고 시민들이 자져온 재활용품에 대해서 바로 현금으로 지불하지 않고 농민장터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사랑화폐’로 교환해주기 때문에 지역생산물과 재활용품 사이에 순환관계가 성립한다. 또 다른 이유는 ‘사랑화폐’를 통해 기부를 자연스럽게 유도하자는 것이다. 일단 교환된 법정화폐는 다시 환전해주지 않고 사용되지 않은 금액만큼을 행사 후에 저소득층 어린이들에게 건강한 먹을거리를 기부하는 데 사용했다. 따라서 미사용 ‘사랑화폐’는 기부의 증표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모든 화폐가 관리되어 취합되기 때문에 이 행사의 경제효과 등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장’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번에 실험한 사랑화폐 시장은 환경과 문화를 결합한 환경문화축제라는 큰 틀에서 ‘숲에서 책과 노래를 만나다’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책은 내친구’, ‘예술아 놀자’, ‘지구야 울지 마’라는 세 가지 주제로 진행되었으며, ‘승용차 없는 날’을 기념하여 대중교통 이용 캠페인이 결합되었다. 총 47개의 시민단체와 기관, 업체, 농가 등이 참여하여 공동으로 운영되었다. 판매물품이나 서비스에 있어서도 지역의 서점과 출판사가 운영하는 책 판매, 지역 원예농협과 농원이 운영하는 꽃 판매, 생협이 운영하는 공정무역물품 및 친환경농산물 판매, 지역농가가 판매하는 직거래 농산물, 지역농협에서 판매하는 농산물, 채식단체가 운영하는 채식요리판매, 지역자활센터에서 운영하는 공정무역커피판매, 지역이주여성단체에서 운영하는 먹을거리 및 수공예품 판매, 단체 및 개인, 마을기업이 운영하는 재활용품 판매,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체험교육 등 매우 다양하게 운영되었다. 또한 지역청소년 및 문화인들이 주축이 된 문화공연과 아이들을 위한 야외장난감 도서관 등도 운영되었다. 이 모든 거래와 프로그램에의 참여는 ‘사랑화폐’로만 이루어졌다.

재미난 결과는 이번 사랑화폐 시장에서의 총 교환금액에서 재활용품을 통한 교환은 38%, 법정화폐 교환을 통한 금액이 62%에 달했다는 점이다. 그중 기부금액이 28%를 차지했다. 즉 재활용품교환은 지역화폐 시장을 촉진하기 위한 마중물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으며 이것으로써 시민들에게 동기가 유발되어 구매(교환)행위가 늘어난 것이다. 그리고 28% 기부금이 조성된 데는 이유가 있다. 실비용은 지방자치단체의 공적기금으로 지원을 받고, 프로그램(서비스) 지원은 100% 기부하도록 하는 원칙을 두었기 때문이다.
 
‘사랑화폐’의 운영방침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오프라인 시장을 개설하여 단기적으로 화폐를 유통시키고, 시장 종료 후 소멸시킨다. 둘째, 시장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모든 거래행위는 지역화폐로만 이루어지게 한다. 셋째, 한번 교환된 지역화폐는 법정화폐로 다시 교환할 수 없게 한다. 넷째, 거스름 등 화폐교환의 번거로움을 최소화하기 위해 1000단위로 화폐를 단일화한다. 다섯째, 오프라인 시장을 통해 화폐의 익명성을 방지한다. 여섯째, 재활용품-화폐 교환으로 시민들의 참여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게 하고 이를 통해 교환을 촉진시키는데 이는 공적자금으로 해결한다. 일곱째, 프로그램(서비스제공)의 실비용은 공적자금으로 충당하고, 여기서 얻는 모든 수익은 100% 기부처리 되도록 한다. 여덟째, 판매소는 반드시 지역상가, 자영업이나 커뮤니티비즈니스, 농가, 시민단체로 한정한다. 아홉째, 지역 직거래농가(생활협동조합은 제외)에 대해 기본 10만원어치구입으로 최소 경비보전을 해주고, 그렇게 구입한 농산물을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지원한다. 마지막으로 판매수입(수거된 사랑화폐)은 시장 종료 후 10% 기부금을 공제하고 나머지를 현금으로 계좌 송금토록 한다.

실험은 계속된다
작년의 실험은 그렇게 끝났다. 작지만 실험의 의미는 매우 컸다. 우선 ‘착한 시장’이라는 공간이 지역화폐 활성화의 조건들을 충족시켜주는 효율적 방식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이번 실험을 통해 지역화폐 시장의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축제를 같이 치렀던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들이 지역화폐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고, 이 실험이 지방자치단체와의 공동거버넌스 모델로 새롭게 인식되게 되었다.

재활용품을 이용한 광주의 지역화폐 실험은 재활용품 수거실적을 향상시킴으로써 공적자금 투입을 용이하게 하고, 순환적 공적기금 형성을 위한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점이 확인되었다. 그래서 현재는 좀더 확대된 통합적 상설 오프라인 시장을 통해서 ‘착한 시장’을 만들기 위한 논의가 진행 중에 있다.

‘사랑화폐’ 실험은 오프라인 시장으로 올 1년 동안 총 4차례에 걸쳐 다시 시도된다. 작년에 추진되었던 생태문화축제라는 타이틀이 아닌 ‘착한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장터를 꾸릴 예정이다. 재활용품교환에 필요한 공적자금은 이미 확보되었으며, 올해 실험 이후 그 성과를 바탕으로 내년에는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또한 음식물쓰레기 감량화 실천사업으로 지역화폐를 새롭게 실험할 것도 계획 중이다.

장기적으로는 새롭게 등장한 지역화폐 모델 ‘커뮤니티 웨이’(레츠는 주로 개인이나 개인사업주가 거래하는 시스템인데, NPO나 지역기업도 참가할 수 있는 레츠의 발전형으로 고안된 커뮤니티비즈니스모델이다. 더 상세한 내용은 <우리끼리 만들어서 쓰는 돈> 참고)를 검토하고 있다.

이 모델을 ‘탄소은행’제도를 통해 추진하려 하고 있다. 탄소은행제도는 가정에서 줄인 온실가스 양만큼을 ‘포인트’로 환산하여 지역은행인 광주은행에서 포인트를 돈으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현제 광주광역시 전체 가구의 43%(23만 5천 세대)가 참여하고 있다. 2009년 약 6만 248세대가 참여하여 74%인 4만 4,746세대가 에너지사용량을 절감하여 약 8억원의 포인트가 발생했다. 2009년 절감을 기준으로 하면 만약 광주 전체 세대가 참여한다면 포인트는 대략 매년 64억원 정도 발생하게 된다. 이를 지역화폐로 지급하고 지역소상인, 지역기업, 커뮤니티비즈니스, 지역자활공동체, 생협, 지역 친환경농가, 공공서비스 등에서 시용하게 한다면, 지역경제순환의 기틀이 형성될 수 있고 지역순환시장 창출이 가능해진다. 덤으로 지구온난화에도 적극 대응하는 일이 된다. 현재 탄소은행제도는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지만, 이것을 지역순환경제 창출이라는 각도에서 접근하고 거기에 지역화폐를 활용한다면, 전혀 새로운 형태의 지역화폐 모델이 탄생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구상하는 실험은 크게 다음 세 가지다.
첫째는 닫힌 시장(상설화된 오프라인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다. 재활용품장터와 농민장터, 커뮤니티비즈니스들이 판매자로 참여하고 지역문화프로그램이 결합하는 통합적 오프라인 시장이다. 이 시장은 판매주체가 지역에 한정되고, 거래는 지역화폐로 수행함으로써 돈(자원)을 외부로 유출시키지 않고 지역 안에 머물게 한다. 이러한 시장은 지역의 유통을 통합하는 협동조합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한 훈련이 된다. 커뮤니티비즈니스에 물품,서비스가 지속적으로 판매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어 이 시장은 지역에 활력과 구매력을 증진시키고, 교환을 촉진하게 된다. 공적 자금 투입이 용이한 재활용품 교환프로그램과 결합하면 수거된 재활용품 판매를 통해 수익을 내어 그 물적 토대를 만들 수 있다.

둘째는, 지역순환시장을 창출하는 것이다.
재래시장 상품권처럼 지역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지역화폐를 유통시키는 것이다. 이 지역화폐는 공적 기관에서 발행하되 사용처를 재래시장, 소규모점포, 커뮤니티비즈니스, 생협, 지역자활센터 공동체 등으로 제한하며,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동물원, 수목원, 도서관, 대중교통, 사회적 교육,복지서비스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기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물품과 서비스를 우선 구매하여 그 구매량만큼을 지역화폐로 유통시킨다. 예를 들어 지방자치단체가 자원봉사자에게 교통비, 탄소포인트제도의 포인트, 각종 지원금이나 인센티브 등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것이다. 이 화폐는 꼭 지폐형식을 취할 필요는 없으며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고 있는 소액결제가 가능한 지역 교통카드를 활용할 수 있다.

소액결제방식은 대형마트를 배제하고 지역의 소규모 상공인, 가게, 재래시장, 문구점, 커뮤니티비즈니스 등에서 가능하도록 제한함으로써 돈이 지역 내에서 순환하게 된다. 교통카드를 활용하는 방식은 결제용 기기 설치가 용이하며, 대중교통 이용률을 높일 수 있고 신용정보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발급도 용이하다. 이것을 ‘포인트카드’라고 부르든 ‘교통카드’라고 부르든 중요한 것은 돈이 역외로 유출되지 않고 지역 안에서 순환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현재의 대형마트와 대기업 중심 수익구조를 지역의 소규모 상공인들과 커뮤니티비즈니스, 지역농가들의 수익구조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외부의 충격에 지역경제가 흔들리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셋째, 상설적으로 지역자원의 유통을 담당할 지역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이다. 생협이든, 커뮤니티비즈니스든, 지역자활센터에서 운영하는 공동체든, 중요한 것은 개별적 유통방식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개별 유통방식은 중앙물류시스템을 필요로 하고 결국 대기업을 이길 수 없다. 지역의 유통을 통합시킴으로써 지역 풀뿌리 기업들끼리의 경쟁을 지양하고 또 개별적으로 시장에 진입해 대자본과 일대일로 경쟁하지 않고 多:1 방식의 경쟁모델을 창출해야 한다. 지역에는 수많은 자원과 능력이 있다. 지역순환경제라는 큰 그림에서 통합하여 상생해야 한다.

결국 유통을 통합하여 지역사회의 모든 서비스가 연결되는 네트워크로서 협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 이 협동조합은 앞의 두 실험과 결합하여 ‘지역순환은행’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며, 이 은행은 모든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인간적 생존을 보장할 기본소득의 재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이 세 가지 실험은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각 분야별로 쪼개져 있는 지역의 시민단체, 커뮤니티비즈니스 그룹, 생활협동조합, 지역 상공인, 지역 농가, 그리고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순환경제를 만들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경제 위기 속에서, 이것은 최소한의 인간적 권리를 보장하고 환경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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